공연/전시
- 영국 대표 '스웨이드' vs 미국 전설 '스매싱펌킨스'…부산에서 맞붙는 록의 자존심
대한민국 록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이 26일, 부산 사상구 삼락생태공원에서 화려한 막을 올리고 3일간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올해는 영국, 미국, 프랑스 등 해외 6개국 17개 팀과 국내 64개 팀을 포함, 총 81개 팀이 참여해 역대급 라인업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개막 전부터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축제의 포문을 여는 첫날에는 브릿팝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전설적인 밴드 스웨이드가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오른다. 여기에 독보적인 감성의 록사운드를 자랑하는 넬, 데뷔 28년 차에 빛나는 국민 밴드 자우림을 비롯해 씨앤블루, 엑스디너리 히어로즈 등 세대를 아우르는 아티스트들이 총출동해 가을밤을 뜨겁게 달군다. 둘째 날의 열기는 더욱 거세진다. 미국 얼터너티브 록의 살아있는 전설, 스매싱 펌킨스가 헤드라이너로 부산을 찾는다. 또한 '팝의 왕자' 미카의 첫 출연 소식과 함께 일본의 록밴드 와니마, 독특한 음악 세계를 구축한 단편선과 순간들, 1980년대를 풍미한 싱어송라이터 윤수일밴드까지 합세해 장르와 국경을 초월한 무대를 선보인다. 축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날에는 헤비메탈의 제왕 메탈리카가 등장해 모든 록 팬들의 심장을 폭발시킬 준비를 마쳤다.이번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은 단순히 화려한 라인업을 선보이는 것을 넘어, 지역 사회와 상생하고 차세대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등 내실을 다지는 데에도 힘썼다. 축제 전 서울, 부산, 전주, 심지어 대만 타이베이까지 총 5회에 걸쳐 '로드 투 부락' 행사를 진행하며 축제의 열기를 전국, 나아가 아시아로 확산시켰다. 또한, 차세대 아티스트 육성 프로그램인 '스쿨오부락'과 신진 아티스트 경연 프로그램 '루키즈 온 더 부락'을 통해 미래의 한국 록 음악계를 이끌어갈 새로운 얼굴들을 발굴하는 장을 마련했다. 지역과의 상생 노력도 돋보인다. 사상구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어 양해를 구하는 한편, 지역 주민에게 푸드코트 부스 운영 및 안내요원 채용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 상인회가 아티스트 라운지 운영에 참여하도록 하는 등 축제의 성공이 곧 지역 경제의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세심하게 설계했다. 온라인 예매 표를 구하지 못한 팬들을 위해 현장 판매분도 마련되었으며, 3일권 24만 2천원, 2일권 17만 6천원, 1일권 11만원으로 관객을 맞이한다.
- "베트남 전쟁터까지 날아갔던 '꽃의 화가'…그녀가 그곳에서 그린 것은?
스스로를 '슬픈 전설'이라 칭했던 화가, 천경자가 우리 곁을 떠난 지 10년. 그의 예술 세계를 총망라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전시가 서울미술관에서 막을 올렸다.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이번 특별기획전은 194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이르는 그의 채색화 80여 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는 2006년 생애 마지막 전시 이후 약 20년 만에 성사된 대규모 회고전으로, 그의 대표작들은 물론, 직접 쓴 저서와 작업 과정이 담긴 사진, 편지 등 방대한 아카이브를 통해 인간 천경자의 삶과 예술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전시의 중심에는 단연 그의 상징과도 같은 여성 인물화들이 자리한다. 천경자의 여성들은 단순한 초상의 모델을 넘어, 주어진 운명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강인한 존재로 그려진다. 대표작 '고(孤)'(1974) 속 '머리에 꽃을 얹은 여인'은 작가의 페르소나 그 자체다. 슬픔과 고독이 서린 깊은 눈빛을 하고 있지만, 이는 타의에 의한 외로움이 아닌, 스스로 선택한 고독 속에서 자신의 내면과 온전히 마주하는 순간의 환희를 담고 있다. 근대 여성 시인 노천명을 그린 초상화(1973) 역시 천경자의 영원한 주제인 '꽃과 여인'을 통해 한 인물의 감수성과 사상을 응축해 보여주는 걸작이다.천경자의 예술 세계는 한곳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진정한 낙원을 찾아 25년간 13차례에 걸쳐 전 세계를 누빈 모험가였다. 이번 전시는 '베니스 산 마르코 사원'(1972), '케냐, 춤'(1974) 등 그의 여정 속에서 탄생한 이국적인 풍경과 인물들을 생생하게 소개하며, 당시의 사진 기록과 함께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만든다. 심지어 1972년에는 정부 파견 작가로 베트남 전쟁의 한복판을 찾아 파병 군인들의 활약상을 기록화로 남기는 등, 시대의 부름에도 기꺼이 응답했던 예술가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자신의 나이만큼 삶이라는 책의 페이지가 넘어간다고 믿었던 그는 91페이지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이번 전시는 '101페이지'라는 이름으로 그의 전설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선언한다. 안병광 서울미술관 회장이 "세월이 지우려 해도 존중받아 마땅할 예술인"으로 그를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듯, 이번 전시는 시대를 앞서간 한 여성 예술가의 치열했던 삶과 그가 남긴 위대한 예술적 유산을 온전히 마주하는 귀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 나혜석의 사진첩이 열리자, 이중섭·박수근·천경자의 삶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빛바랜 흑백 사진 위, 붉고 위태롭게 떨리는 글씨 하나가 새겨져 있다. '羅(라)'.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은 사진 속 자신을 그렇게 불렀다. 수전증으로 고생하던 말년, 붓 대신 떨리는 손으로 남긴 이 흔적은 한 예술가가 자신의 존재를 절박하게 확인하려 했던 마지막 몸부림처럼 보인다. 2024년 개관 10주년을 맞은 수원시립미술관이 바로 이 나혜석의 유일한 유품인 '나혜석 사진첩'을 처음으로 전면 공개한다. 오는 26일 막을 올리는 한국 근현대미술전 '머무르는 순간, 흐르는 마음'을 통해서다.2017년 유족의 기증으로 미술관 품에 안긴 이 사진첩은 단순한 사진 모음집이 아니다. 지난 2년간의 정밀한 상태 조사와 과학적 보존 처리, 그리고 기초 연구를 거쳐 비로소 대중 앞에 서게 된 역사의 기록 그 자체다. 가죽 표지로 된 앨범의 검은 내지 위에는 총 96장의 사진과 101건에 달하는 나혜석의 자필 설명이 남아있다. 건강이 악화되던 생애 후반기에 정리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첩의 내용은 시간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고 뒤죽박죽 섞여 있다. 남편 김우영의 일본 유학 시절부터 그녀가 홀로 해인사에 머물던 1930년대까지, 흩어진 기억의 파편들이 일정한 규칙 없이 흩어져 있다. 두 장의 풍경 사진을 제외한 대부분은 인물 사진이며, 그중 상당수는 가족의 모습을 담고 있어 나혜석이 시대의 한파 속에서도 끝내 놓지 못했던 애틋한 그리움의 깊이를 짐작하게 한다.이번 전시는 '머무르는 순간, 흐르는 마음'이라는 제목처럼, 사진첩이라는 머무르는 순간을 통해 그 안에 담긴 나혜석의 흐르는 마음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사진 속에 붙잡힌 찰나는 영원히 머무르지만, 그를 바라보는 마음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새로운 울림을 만들어낸다. 전시는 나혜석의 사진첩에서 시작해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 천경자 등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12인의 작가들의 작품 세계로 확장된다. 첫 번째 장 '한 예술가의 사진첩'에서는 사진첩 원본과 함께 지난한 연구 및 보존 처리 과정을 공개하며 하나의 아카이브가 어떻게 전시로 탄생하는지를 보여준다. 이어 두 번째 장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평범한 순간으로부터'에서는 가족을 창작의 원천으로 삼았던 박수근, 이중섭 등의 작품을 통해 나혜석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그 감정을 연결한다. 세 번째 장 '여정의 어딘가에서'는 세계 일주와 해인사 여행 등 나혜석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배운성, 이응노 등 동시대 작가들의 여정과 교차시키고, 마지막 장 '나를 잊지 않는 행복'에서는 여행을 통해 예술적 변주를 꾀했던 박래현과 천경자의 작품을 조명한다. 그룹 몬스타엑스의 민혁이 오디오 가이드 재능기부로 참여해 나혜석과 동시대 작가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며 관람의 깊이를 더할 예정이다.
- 57년간 나무만 깎아온 '천하제일' 장인, 그가 마침내 공개한 '나무 속 비밀'의 정체
15세의 소년이 처음 조각도를 잡았던 그 순간부터 무려 57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반세기가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오직 나무에 부처의 형상을 새기는 일에만 몰두해 온 장인이 있다. 마침내 "천하제일의 목조각장"이라는 영예로운 별칭을 얻은 국가무형문화재 허길량 장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의 혼과 땀이 응축된 네 번째 개인전이 오는 15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며, 평생을 바쳐 나무와 나눠온 깊은 교감의 결과물들을 대중 앞에 선보인다.이번 전시의 주제는 ‘박달다듬이목과 소나무에서 깨어난 비천(飛天)’이다. 단단하기로 이름난 박달나무와 우리 민족의 정서를 품은 소나무, 그 오랜 세월의 결을 품은 나무에 장인의 손길이 닿아 비로소 생명을 얻은 천상의 존재, 비천상 20여 점이 전시의 중심을 이룬다. 마치 고대 사찰의 벽화 속에서 막 튀어나온 듯, 유려한 곡선과 생동감 넘치는 표정을 지닌 비천상들은 관람객을 단숨에 신화의 세계로 이끈다. 여기에 미륵반가사유상, 보살상, 삼신불 등 총 30여 점에 이르는 작품들은 그 자체로 장인의 57년 수행과도 같았던 작업 역사를 웅변한다.허길량 장인의 작업은 단순한 공예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는 은사였던 서수연, 이인호 우일 스님의 가르침 아래, 나무를 깎는 기술 이전에 불교의 깊은 세계관을 먼저 체득했다. "불상은 단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부처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모든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오대산 중대보궁을 비롯해 전국 각지의 이름난 사찰에 그의 손에서 탄생한 불상들이 모셔져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조각칼 끝에서 나무는 더 이상 무생물이 아닌, 불성을 향한 염원과 깨달음의 메시지를 품은 살아있는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국내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기념비적인 작품이 최초로 공개되어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부처가 최초로 불상을 조성할 때 사용했다는 전설 속의 나무, '전단향목'으로 조각한 높이 60cm의 관음보살상과 지장보살상이 바로 그것이다. 은은한 향과 고귀한 결을 자랑하는 이 불상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전시 공간을 압도하는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또한 법신·보신·화신이라는 불교의 심오한 세계를 조형적으로 풀어낸 미륵반가사유상과 장엄한 보살상들은 장인이 평생에 걸쳐 추구해 온 조형미와 정신세계의 정수를 남김없이 보여준다.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허길량 장인이 일평생 쌓아온 부처님 조각의 기량이 집약된 전시"라며 "많은 이들에게 부처님의 마음을 함께 느끼고 나눌 귀한 인연이 될 것"이라고 축하의 말을 전했다. 장인 스스로도 "이번 전시가 관람객에게 불교미술의 참뜻을 나누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는 소박한 바람을 밝혔다. 이번 전시는 한 거장의 예술 세계를 감상하는 것을 넘어,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 속에서 묵묵히 전통을 지키고 미래를 성찰하게 하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 문 열자 모두가 경악…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반전 장롱'의 비밀
조선 왕실의 품격과 19세기 말 대한제국의 역사를 품은 귀한 나전칠기 가구가 마침내 국가의 보물로 인정받았다. 국가유산청은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이 소장한 '나전산수무늬삼층장'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이 삼층장은 단순한 가구를 넘어, 한 세기를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이어진 특별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그 시작은 대한제국 시절, 배재학당을 설립한 미국인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고종황제로부터 직접 하사받았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이후 아펜젤러의 후손들은 이 삼층장을 가보로 삼아 대를 이어 소중히 보관해왔고, 마침내 그의 외증손녀 다이앤 크롬 여사가 2022년 그 의미를 기리고자 배재학당역사박물관에 기증하며 140여 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높이 180.3cm, 가로 114.9cm에 이르는 이 대형 삼층장은 1800년대 이후 조선의 왕실과 최상류층에서 유행했던 가구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당시 왕실의 자녀가 분가하거나 시집갈 때 혼수품으로 마련해주던 최고급 생활필수품이었던 것이다. 소나무로 뼈대를 잡고, 그 위를 영롱한 빛깔의 자개(나전)로 빼곡하게 장식했다. 장의 정면과 양쪽 측면은 마치 한 폭의 정교한 산수화를 펼쳐놓은 듯, 산과 물, 그리고 그 속에서 노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산수인물문(山水人物文)으로 가득 채웠다. 여기에 문자, 꽃, 과일,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 등껍질 무늬(귀갑문) 등을 조화롭게 배치하여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이 삼층장의 진정한 백미는 문을 열었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6개의 문짝 안쪽 면에는 겉면의 단아한 나전 장식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밝고 화려한 색채로 그려진 괴석화훼도(怪石花卉圖)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겉과 속을 다르게 장식하여 반전의 미를 꾀했던 당시 상류층 가구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이다. 또한, 장의 맨 위 천판의 돌출부를 짧게 처리하고 앞면 전체를 판판하게 가공하는 방식은 통영 지역 장인들의 고유한 제작 기법을 따르고 있으며, 자개를 실처럼 가늘게 잘라 붙이는 '끊음질'과 세밀한 선을 표현하는 '주름질' 등 당대 최고의 나전 기술이 총망라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국가유산청은 이 삼층장이 19세기 말 궁중과 상류층의 생활 문화를 보여주는 동시에, 대한제국 황실과 서양 선교사 간의 교류 관계를 입증하는 역사적 자료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무엇보다 이 정도의 크기와 완성도를 갖춘 유사한 삼층장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그 예를 찾아보기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희소성과 문화유산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인정받았다.
- 편견 뚫고 무대 위로! '원조 헌트릭스' 무당들, 국립국악원서 '힙'한 변신 예고!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걸그룹 ‘헌트릭스’는 무대 위에서 용기와 희망을 노래하며 어둠을 물리치고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존재다. 세대가 거듭될 때마다 새로운 헌터가 선정되어 이 숭고한 임무를 수행하는데, 그들의 먼 선대에는 바로 한국의 전통 무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 가상의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특별한 무대가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펼쳐진다. 오는 25일부터 26일까지 이틀간, ‘원조 헌트릭스’라 불릴 만한 두 명의 무당, 즉 국가무형유산 보유자인 김동언(70·부산 기장 오구굿 보유자)과 정영만(69·남해안별신굿 보유자)이 현대 국악 작곡가들의 손에서 재탄생한 가락과 국립국악원 창작악단(관현악)의 웅장한 연주에 맞춰 ‘한 판 굿’을 선보인다. 전통과 현대, 영성과 예술이 어우러지는 이 파격적인 협연은 단순한 공연을 넘어, 한국 전통 문화의 깊이와 현대적 재해석의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이들에게 굿은 단순한 생업을 넘어 인생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영만 보유자는 무려 11대째 가업을 이어온 세습무다. 신병을 앓아 신을 받는 강신무와 달리, 세습무는 조상 대대로 신분을 이어받아 무업을 수행하는 독특한 전통을 지닌다. 김동언 보유자 역시 초대 동해안별신굿 전승자인 고(故) 김석출 선생의 셋째 딸로, 어린 시절부터 굿과 함께 성장해왔다. 두 보유자는 오랜 세월 동안 굿이 겪었던 사회적 편견과 오해 속에서도 굳건히 전통을 지켜왔다. 이제야 사람들이 굿이라는 전통문화와 예술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봐 주는 것 같다며, 지난 세월의 고난을 보상받는 듯한 기분이라고 소회를 밝혔다.김동언 보유자는 아홉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1년 후 아버지의 심청굿을 보며 처음으로 굿의 깊은 울림을 경험했다고 회상했다. 심 봉사가 아내를 잃고 슬퍼하는 대목에서 아버지가 목이 메어 더 이상 사설을 읊지 못하자, 구경꾼 틈에 숨어있던 가족들을 안으로 들여보냈고, 어린 김동언은 몰래 아버지의 굿을 보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정영만 보유자는 굿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언제부터 굿을 봤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마을 산등성이에서 들려오던 징 소리와 피리 소리가 가슴에 사무쳤던 느낌은 또렷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굿은 그들의 유년 시절부터 삶의 모든 순간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었다.하지만 굿을 이어오는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정영만 보유자는 20대 시절, 굿을 하지 않기 위해 배를 타고 택시 운전을 하는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였다고 고백했다. 당시 무당 집안이라는 이유로 심한 핍박과 편견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바로 윗대 보유자인 왕고모의 부름으로 서른이 되기 전 다시 굿판으로 돌아왔다. 김동언 보유자 역시 고생이 많았다. 예전에는 차도 없어 동생들을 업고 5리, 10리 길을 걸어 굿을 하러 다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굿이 즐거웠다고 말한다. 남들이 ‘무당 딸’이라고 손가락질해도 싫거나 부끄럽지 않았던 것은, 언젠가 큰 무녀가 되겠다는 확고한 목표와 작심이 있었기 때문이다.이들이 평생을 바쳐 지켜온 굿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속 헌트릭스가 세상을 구하는 기제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굿의 사설은 대부분 고인의 편안한 길을 돕거나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무당이 10여 명의 악사들과 함께 굿판을 벌이면, 빙 둘러앉은 구경꾼들은 무당이 읊조리는 가락에 맞춰 함께 웃고 울며 마음의 위안을 얻고 삶의 고통을 치유했다. 정영만 보유자는 굿을 할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 “사랑했던 엄마가 고인이 되었다고 생각해보라. 그러면 자녀에게 엄마는 종교가 된다. 때때로 ‘엄마, 하늘에 잘 있지? 나 좀 도와줘’라고 말할 것이다. 이에 화답하는 엄마는 ‘내가 없더라도 희망을 갖고 잘 살아’라고 말할 것이다. 이 엄마의 역할을 대신해주는 것이 바로 무당”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니 대충할 수 없으며, 정말 넋이 오는 듯 애절하고 간절하게 노래한다고 덧붙였다. 김동언 보유자 역시 실제 굿을 하면 관객들의 호응에 따라 앵콜 격으로 타령 같은 것을 더 부르기도 한다며, 이는 극락으로 보내는 망자들을 섭섭지 않게 보내는 차원이라고 전했다.하지만 요즘은 굿을 하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고 정영만 보유자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예전에는 경남 통영 지역에 ‘산수계’라는, 고인이 된 지역 예인들을 기리는 굿 축제가 있었다. 고을의 무당들이 모두 모여 2박 3일 동안 굿을 하고, 일반인들도 구경하러 와 주변 식당들까지 성황을 이루던 큰 행사였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경찰들이 ‘풍기문란’을 이유로 단속을 나오면서 굿 문화가 크게 위축되었다고 그는 회상했다.한때 무당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손가락질과 편견에 시달려야 했던 이들에게 이번 국립국악원 창작악단과의 협연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국악원이 2021년부터 시작한 ‘전통의 재발견’ 시리즈의 여섯 번째 공연으로, 김동언, 정영만 보유자뿐만 아니라 유지숙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 이태백 진도씻김굿 이수자 등 지역별 대표 명인들이 함께 무대에 선다.음악적으로도 이번 협연은 상당한 도전이다. 굿은 창을 담당하는 ‘대사산이’가 주도하며, 정해진 악보나 장단이 따로 없다. 함께하는 산이(악사)와 승방(무녀) 역시 대사산이의 노래 흐름에 맞춰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실상 대부분 애드리브로 이루어지던 굿이 관현악단과의 협연을 통해 무대 위로 올라오면서, 연주 전 약속하고 조율해야 할 부분이 훨씬 많아졌다. 보유자들은 이번 무대를 위해 관현악단과 3번 이상의 리허설을 거치며 섬세한 호흡을 맞춰나가고 있다.협연을 준비하는 소회에 대해 정영만 보유자는 “국악계 후배들과 이 장중한 음악을 함께 엮는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큰 굿판 같다”며, “우리 음악은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있다. 이런 오묘한 기법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따라오지 못한다. 드디어 이런 굿의 진가를 알아준 것 같아 뿌듯하다”고 벅찬 감회를 드러냈다. 김동언 보유자 역시 “빨리 관객이 보고 싶다. 관객이 있으면 또 내 입에서 나오는 사설이 달라질 것이다”라며 관객과의 교감을 기대했다. 그녀는 예전에 덴마크에서 굿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돌아가신 분들의 한을 풀어주는 문화가 그들에게는 생소했는지 관객들이 무척 좋아했다고 전하며, 이번 공연에서도 그런 뜨거운 호응이 나오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으로 시작된 ‘헌트릭스’의 이야기가 국립국악원 무대에서 한국 전통 무당들의 깊은 예술혼과 만나 어떤 감동과 전율을 선사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 '기생충' '오징어 게임' 정재일, 이번엔 '지옥'을 작곡했다!
한국 대중음악과 영화 음악계를 넘어 이제는 클래식 무대까지 섭렵하며 전방위적인 음악적 재능을 뽐내는 작곡가 정재일이 서울시립교향악단과의 협연을 통해 자신의 첫 순수 관현악곡 '인페르노(Inferno·지옥)'를 선보인다. 오는 25일과 26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서울시향 정기연주회에서 초연될 이 작품은 정재일에게 있어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 영화 OST 작업을 통해 수많은 오케스트라 곡을 작곡해왔지만, 이번 '인페르노'는 특정 영상이나 서사에 얽매이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내면에서 길어 올린 음악적 영감과 구상으로 완성된 관현악곡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의 음악 세계에 있어 새로운 전환점이자, 클래식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정재일은 이미 한국 음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베이시스트로 밴드 ‘긱스’에 합류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한 그는, 이후 패닉, 박효신, 아이유 등 국내 최정상급 아티스트들의 앨범 작곡과 프로듀싱을 맡으며 대중음악의 지평을 넓혔다. 그의 음악적 스펙트럼은 영화계에서도 빛을 발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옥자’를 비롯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에 참여하며 영화의 감동을 배가시켰다. 특히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음악 감독으로서 미국 할리우드 뮤직 인 미디어 어워즈에서 한국인 최초로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며, 그의 음악적 역량은 전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이처럼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그조차도 브람스, 파가니니 등 서양 음악사의 거장들이 연주되는 클래식 무대에 자신의 신곡을 올리는 것은 처음이다. 이 특별한 도전의 시작은 약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시향의 새로운 음악감독으로 임명된 세계적인 지휘자 얍 판 츠베덴은 2023년 1월 기자회견에서 “오케스트라는 재능 있는 작곡가들에게 작곡의 기회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하며, 그 예로 정재일을 직접 언급했다. 한 달 뒤 정재일은 자신의 앨범 ‘리슨(Listen)’ 발매 기념 기자회견에서 츠베덴 감독의 러브콜에 대해 “부담은 되지만 해보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고 긍정적으로 화답하며, 한국 음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이후 4월, 츠베덴 감독이 직접 한국을 찾아 두 거장의 역사적인 ‘오프라인 만남’이 성사되었다. 당시 정재일은 “자리에 나가면서도 ‘나는 정식으로 음악을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콘텐츠를 위한 음악을 작곡했던 사람이라 단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은 못 만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여 선생님을 뵈러 나갔다”고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하지만 츠베덴 마에스트로는 “네가 할 수 있는, 잘 할 수 있는 걸 하면 된다”는 따뜻하면서도 확신에 찬 격려로 그의 깊은 고민을 덜어주었다. 이 한마디는 정재일에게 큰 용기가 되었고, 마침내 그는 클래식 무대를 위한 순수 관현악곡을 쓰기로 마음먹었다.수락은 했지만, 창작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약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창작의 고통'이 그를 짓눌렀다. 그는 23일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신작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음악 안에서 모든 걸 시작하고 끝내야 했어요. 그래서 지옥 같은, 절망 같은 날들을 보냈습니다. 처음 악보와 음원을 드렸을 땐 심사, 채점 받는 초등학생 같은 기분이었어요”라며 당시의 힘겨움을 토로했다.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영감을 받아 소설 속 대사를 나레이션으로 삽입할지 여부를 두고 곡을 쓰는 내내 고민했으며, 때로는 진도가 나가지 않아 “안갯 속을 걷는 듯 막막”했다고 회상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그저 피아노 앞에 앉아 버티고 또 버티는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때로는 영화 ‘미키 17’ 이후 함께 일한 오케스트레이터(관현악을 위한 편곡자)들의 전문적인 도움을 받기도 했다. 이 길고 고통스러운 창작의 고리를 끊어낸 것은 다름 아닌 ‘마감’이었다. 정재일은 “계속 실험하고 학습하다가 약속 기간이 다가오면 초인적인 힘이 나온다. 그렇게 해서 완성을 하게 됐다”며 마감의 힘을 강조했다.악보를 넘기고 나서도 그의 마음은 조마조마했다. 클라이언트와 즉각 소통하며 피드백을 주고받는 영화 음악 작업과 달리, 클래식 작업은 악보를 제출한 후 바로 반응을 받기 어려웠고, 감히 묻지도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고 한다. 특히 공연 전날(22일) 리허설은 “정말 100명의 연주자들이 내 시험지를 채점하는 선생님 같았다”고 표현하며, 그의 긴장감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그는 또 “군대 갔을 때도 브람스 심포니 1번 미니 스코어(악보)를 몰래 숨겨서 갔었는데, 이번 공연에 그런 브람스와 한 무대에 선다고 생각하니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여, 클래식 거장과의 동반 무대에 대한 경외감과 함께 인간적인 부담감을 솔직하게 드러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재일은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받고 쓰는 것이 아닌, ‘음악만을 위한 음악’을 계속해서 만들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그는 “우연찮게 제가 함께 작업했던 영화들이 해외에서 성공을 거두며 유럽에서 공연할 기회가 많아졌다”며, “무대의 주인공으로 서는 건 너무 무서운 경험이지만 한편으론 ‘라이브 음악’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을 다시 느끼게 됐다. 앞으로도 저의 음악만을 위한 음악, 쇼들은 계속 더 발전시켜 나가고 싶다”고 말하며, 순수 음악 창작에 대한 열정과 미래 비전을 제시했다. 정재일의 이번 서울시향과의 협연은 그의 음악 세계를 한층 더 확장시키는 중요한 발걸음이자,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의 '인페르노'는 단순한 음악 작품을 넘어, 한 예술가의 치열한 고뇌와 열정이 담긴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다.
- 연극·뮤지컬이 반값?…'공짜표'나 다름없는 15,000원 할인권, '이 지역'에만 쏟아진다
가을의 문턱에서 문화 예술계에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공연과 전시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놓칠 수 없는 대규모 할인 혜택이 다시 한번 문을 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함께 지난 8월 배포 후 사용되지 않은 공연 할인권 약 36만 장과 전시 할인권 약 137만 장을 다시 배포한다고 밝혔다. 이는 문화 예술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국민의 문화 향유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조치로, 연말까지 풍성한 문화생활을 계획하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가 될 전망이다.이번 2차 배포는 지난 1차 사업의 아쉬움을 교훈 삼아 더욱 실효성 있는 방식으로 개편된 점이 눈에 띈다. 당시에는 6주라는 비교적 긴 사용 기간을 설정했으나, 이로 인해 할인권을 발급만 받아두고 기간 내 사용하지 않아 소멸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이번에는 할인권의 유효기간을 '1주일'로 대폭 단축했다. 할인권을 발급받았다면 반드시 해당 주 수요일 자정까지 사용해야 하며, 사용하지 않은 할인권은 자동으로 소멸되어 다른 이용자를 위한 물량으로 전환된다. '일단 받아두고 보자'는 심리를 차단하고, 실제 관람 의사가 있는 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본격적인 할인권 배포는 오는 9월 25일부터 시작되며, 12월 3일까지 매주 목요일 오후 2시에 새로운 물량이 풀린다. 참여 예매처는 네이버예약, 놀티켓, 멜론티켓, 클립서비스, 타임티켓, 티켓링크, 예스24 등 총 7곳으로 확대되어 이용자들의 접근성을 높였다. 온라인 예매처별로 공연 1만 원, 전시 3,000원 할인권을 매주 1인당 2매씩 발급받을 수 있으며, 결제 1건당 1매의 할인권이 적용된다.특히 주목할 점은 할인 적용 방식이다. 개별 티켓 가격이 아닌 총 결제 금액을 기준으로 할인이 적용되므로, 할인권 금액보다 저렴한 공연이나 전시라도 여러 장을 함께 구매해 최소 결제 금액(공연 1만 5,000원, 전시 5,000원)을 넘기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친구나 가족과 함께 관람할 계획이라면 더욱 유리한 조건이다. 할인 대상은 연극, 뮤지컬, 클래식, 국악, 무용 등 순수 공연 예술과 전국의 국공립 및 사립 미술관에서 열리는 시각예술 전시, 아트페어 등이다. 다만, 대중음악 콘서트나 산업 박람회 등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므로 미리 확인이 필요하다.여기에 비수도권 지역의 문화 활성화를 위한 파격적인 혜택이 추가된다. 네이버예약, 클립서비스, 타임티켓, 티켓링크 4개 예매처에서는 비수도권에서 개최되는 공연과 전시에만 사용할 수 있는 '비수도권 전용 할인권'을 매주 1인당 2매씩 추가로 발급한다. 이 전용 할인권은 전국 단위 할인권보다 혜택의 폭이 훨씬 크다. 공연은 1만 5,000원, 전시는 5,000원의 할인을 제공하며, 최소 결제 금액 기준은 공연 2만 2,000원, 전시 7,000원 이상이다. 지역의 우수한 문화 콘텐츠를 더욱 저렴하게 즐길 수 있도록 유도하는 동시에, 수도권에 집중된 문화 수요를 분산시키는 효과까지 기대되는 정책이다.
- 밤이 되면 '이곳'이 거대한 캔버스로 변한다…알고 보니 유네스코 세계유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이 가을의 절정 속에서 역대급 규모의 축제 준비를 마치고 관람객을 맞이한다. 수원시는 오는 9월 27일부터 10월 4일까지 8일간, '제62회 수원화성문화제'를 필두로 한 3대 가을 축제를 수원화성 일원에서 대대적으로 펼친다고 밝혔다. 올해는 '새빛팔달'이라는 주제 아래, 기존 3일이었던 축제 기간을 8일로 대폭 늘리고, 공간 역시 화성행궁에 국한되지 않고 수원화성 전역으로 확대하여 그야말로 도시 전체를 거대한 축제의 장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다. 이는 단순히 규모만 키운 것이 아니라, 내실 있는 글로벌 프로그램과 시민 참여형 콘텐츠를 대거 확충하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축제로 도약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이번 축제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한층 더 장엄하고 품격있게 돌아온 대규모 프로그램들이다. 조선시대 왕의 뱃놀이를 모티브로 한 수상 퍼포먼스 '선유몽'과 실제 야간 군사훈련을 방불케 하는 '야조'는 수원화성의 밤을 화려하게 수놓으며 관람객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또한, 정조대왕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열었던 회갑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몰입형 예술 퍼포먼스 '진찬'은 마치 관람객이 230년 전의 역사적 순간에 직접 참여하는 듯한 생생한 감동을 안겨줄 예정이다. 여기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초대형 종이 구조물을 완성하는 '시민의 위대한 건축, 팔달' 퍼포먼스는 축제의 의미를 더하며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축제의 가치를 실현한다.축제의 백미는 단연 9월 28일 펼쳐지는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이다. 무려 1000명의 행렬단과 70필의 말이 동원되는 이 거대한 행렬은 노송지대를 출발해 장안문을 거쳐 행궁광장까지 이어지며, 1795년 을묘원행의 웅장했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행렬 도중 장안문에서는 경기도무용단과 무예24기 시범단의 박진감 넘치는 공연이 펼쳐져 볼거리를 더하고, 행궁광장에서는 능행차의 도착을 알리는 화려한 입궁 퍼포먼스가 대장정의 마무리를 장식한다.밤이 되면 수원화성은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9월 27일부터 10월 12일까지 열리는 '2025 수원화성미디어아트'는 '만천명월 정조의 꿈, 빛이 되다'라는 주제 아래, 화서문과 장안문 등 수원화성의 성벽을 거대한 캔버스로 삼아 환상적인 빛의 향연을 펼친다. 성벽 위로 그려지는 정조의 꿈과 수원의 미래는 전통과 현대 기술의 조화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차원의 예술적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이 밖에도 시민들이 직접 가마를 메고 달리는 '가마 레이스', 과거시험을 체험하는 '별시날' 등 다채로운 시민 참여 프로그램과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글로벌빌리지'까지 운영되어, 명실상부 모두가 즐기고 참여하는 글로벌 축제의 면모를 갖추었다.
- 왕위 계승 1순위였던 그가 ‘미친 척’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조선 왕조의 기틀을 세운 철혈 군주 태종과 그의 세 아들, 양녕, 효령, 충녕대군. 역사에 기록된 왕좌를 둘러싼 냉혹한 권력 투쟁의 이면에 숨겨진 네 남자의 뜨거운 고뇌와 선택의 순간이 강렬한 춤사위로 재탄생한다. 아트로버컴퍼니와 국립정동극장이 공동으로 기획하여 오는 11월 15일부터 21일까지 국립정동극장 무대에 오르는 창작 무용극 ‘녕(寧), 왕자의 길’은 역사적 사실을 넘어, 거대한 운명 앞에 선 인간의 내면을 깊숙이 파고드는 작품이다.공연은 오직 8명의 남성 무용수들이 뿜어내는 폭발적인 에너지로 무대를 가득 채운다. ‘평안하다’는 뜻을 지닌 ‘녕(寧)’이라는 이름을 물려받았지만, 결코 평안할 수 없었던 왕자들의 삶을 역설적으로 조명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평안’을 찾아 나서는 처절하고도 외로운 길을 5개의 옴니버스 형식으로 그려낸다. 관객들은 역사책의 단편적인 기록 뒤에 가려졌던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를 전통춤의 정수를 통해 생생하게 마주하게 된다. 피의 숙청을 통해 왕좌에 오른 태종의 강인함과 고독은 날카로운 검무로,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으나 세자라는 굴레에 갇혔던 양녕의 저항과 방랑은 호방한 한량무로 표현된다. 불교에 귀의하여 속세를 떠난 효령의 구도를 향한 열망은 고결한 승무에 담아냈으며, 왕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태평성대를 향한 신념을 다졌던 충녕(훗날 세종)의 의지는 장엄한 태평무를 통해 펼쳐진다.특히 이번 공연은 Mnet의 인기 프로그램 ‘스트리트 맨 파이터’를 통해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은 백상하 안무가가 참여하여, 전통적인 남성 서사에 현대적인 군무의 미학을 더했다는 점에서 큰 기대를 모은다. 그의 감각적인 연출은 고전적인 춤사위에 트렌디하고 역동적인 힘을 불어넣어, 남성 무용수들의 응축된 에너지를 극대화하며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강렬한 미장센을 선사할 전망이다. 연출을 맡은 최성진은 “역사적 사실의 나열이 아닌, ‘천명’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진 운명에 저항하고 때로는 순응하며 만들어 낸 감정의 균열과 내면의 선택에 초점을 맞췄다”며, “스스로의 의지로 운명을 개척해 나간 네 남자의 이야기에 주목해 달라”고 당부했다.작품의 완성도와 대중성은 이미 여러 지원 사업 선정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4년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과 예술경영지원센터의 2025년 ‘공연예술 지역 유통지원 사업’에 연이어 선정되며 작품성과 흥행 잠재력을 모두 인정받았다. 이번 국립정동극장과의 공동 기획은 우수한 민간 창작 단체의 유통 경로를 확대하고, 더 많은 관객에게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이겠다는 극장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정성숙 국립정동극장 대표는 “이번 기회를 통해 더욱 완성도 높은 무대로 거듭나 다양한 관객들과 만나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하며 작품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