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전시
- 故 박용찬 선생이 남긴 '이 유산', 70년 세월 넘어 마침내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잿빛 도시 서울, 팍팍한 일상에 지친 이들을 위로할 특별한 공간의 문이 열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가 대학로 예술가의집 라운지룸에 과거 클래식 음악 감상의 성지(聖地)로 불렸던 ‘르네쌍스 고전음악감상실’의 영혼과 감성을 고스란히 되살린 공간, ‘르네쌍스, 르:네쌍스’를 선보인다. 이곳은 단순한 음악 감상실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낭만이 깃든 문화적 유산을 오늘날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특별한 시간여행의 장이다.‘르네쌍스 고전음악감상실’의 역사는 전쟁의 포화가 채 가시지 않은 1951년, 대구 피난지에서 시작된다. 설립자인 故 박용찬(1916~1994) 선생은 암울했던 시절, “음악이 주는 해방감과 평안을 절망에 빠진 대중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숭고한 뜻 하나로 이 공간을 열었다. 이후 1986년 서울 종로에서 아쉽게 막을 내리기까지, ‘르네쌍스’는 당대 최고의 지성과 예술가들이 모여 클래식 선율에 마음을 기대던 사랑방이자, 전쟁의 상처와 독재의 시름을 위로받던 영혼의 안식처였다.아르코는 바로 이 정신을 21세기에 되살리고자 했다. 새롭게 태어난 ‘르네쌍스, 르:네쌍스’는 단순한 복원을 넘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소통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시간을 압도하는 전설적인 명기(名器)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당시에도 ‘꿈의 스피커’라 불렸던 JBL 하츠필드 D30085 스피커 한 쌍이 위용을 뽐내며 서 있고, 그 옆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축음기가 자리한다. 벽면에는 빛바랜 신문 기사, 낡은 입장권 등 지금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한 사료들이 전시되어, 마치 박물관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이 공간의 심장은 단연코 ‘소리’다. 故 박용찬 선생이 평생에 걸쳐 수집하고 기증한 수많은 LP와 SP 음반 중 일부를 디지털로 세심하게 변환한 음원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디지털 음원은 오디오 애호가들의 로망인 매킨토시 진공관 앰프를 거쳐 전설적인 JBL 하츠필드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진다. 아날로그 시대의 따뜻하고 풍성한 사운드가 진공관 앰프의 깊이를 만나 빚어내는 소리의 울림은, 스마트폰 이어폰으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압도적인 감동을 선사한다. 플레이리스트는 매달 새롭게 구성되어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음악적 경험을 약속한다.또한, 시대를 초월한 음악의 가치를 더 널리 알리기 위해 1915년부터 1943년 사이에 제작된 VICTOR, 일본축음기상회, 일동축음기상회 등의 희귀 음반들은 한국예술디지털아카이브를 통해 온라인으로도 감상할 수 있도록 공개했다.이 특별한 공간은 더 많은 이들이 깊이 있는 감상을 누릴 수 있도록 예술가의집 홈페이지를 통한 사전 예약제로만 운영된다. ‘르네쌍스, 르:네쌍스’는 단순한 음악 감상을 넘어, 한 개인의 숭고한 나눔의 정신이 어떻게 시대를 넘어 울림을 주는지를 직접 체험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 '진짜 웃음' 보장한다는 역대급 코미디 연극의 정체
"웃음에도 격이 있다"고 당당히 선언하며 대학로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던 극단 화담의 화제작, 코미디 연극 '스카프'가 관객들의 끊임없는 요청과 열광적인 호응에 힘입어 마침내 앙코르 무대로 돌아온다. 오는 9월 16일부터 28일까지 대학로 후암스테이지에서 다시 한번 관객들에게 '참 웃음'의 진수를 선사할 예정이다.연극 '스카프'는 한때 잘나갔지만, 사랑했던 전처를 잃은 깊은 상실감에 빠져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하는 비운의 작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의 앞에 어느 날,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는 영화감독이 나타난다. 그의 미완성 유작을 영화화하는 조건으로, 상상도 못 할 거액의 돈을 제시한 것이다.이때부터 걷잡을 수 없는 소동이 시작된다. 거액의 돈을 손에 넣고 싶은 작가의 현처 '윤경'은 엉뚱하고 발칙한 계획을 세운다. 바로 배우 '경구'를 고용해, 죽은 전처의 영혼에 빙의된 척 연기를 시키는 것. 작가의 마음을 흔들어 어떻게든 계약을 성사시키려는 속셈이다. 하지만 이들의 어설픈 사기극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죽은 전처가 생전에 아꼈던 '스카프'를 매개체로 가짜 연기를 펼치던 배우에게, 실제로 전처의 영혼이 빙의되는 기막힌 사건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이처럼 '가짜가 진짜가 되는' 기상천외한 상황 속에서, 연극은 돈 앞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본성과 욕망, 사랑과 질투,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인물들의 심리를 매우 유쾌하고 날카롭게 파헤친다. 단순한 슬랩스틱이나 말장난을 넘어, 탄탄한 서사와 예측 불가능한 전개로 관객의 허를 찌르는 웃음을 유발하며 제8회 1번출구연극제에서 뜨거운 찬사를 받은 바 있다.작품의 작·연출을 맡은 박상협 대표는 "억지웃음이 판치는 시대에, 제대로 된 한국판 정통 코미디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로 이 작품을 창작했다"며, "관객들이 극장을 나설 때 형식적인 웃음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참 웃음'을 가져가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이번 앙코르 공연에는 전세기, 김상원, 박호진, 변나라, 이윤경, 정성조, 주재후, 이태희, 류승주, 박상협 등 초연을 빛냈던 실력파 배우들이 다시 뭉쳐 한층 더 깊어진 호흡과 농익은 코미디 연기를 선보인다.극단 화담은 2023년 무언극 '날개'로 월드 2인극 페스티벌에서 대상, 연출상, 연기상을 모두 휩쓸며 3관왕을 차지한 저력 있는 창작 집단이다. 이후 '좀비', '가스라이팅' 등 강렬한 블랙코미디 작품들을 연이어 선보이며,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와 신선한 충격을 통해 관객과 평단의 주목을 받아왔다. 이번 공연 역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플러스의 '2025 담금질 프로젝트 '예술에 담그다''의 후원을 받아 작품의 완성도를 더욱 높였다.
- 싱글 1위도 모자라 앨범 차트까지 '꿀꺽'…'케데헌' 신드롬, 대체 뭐길래?
K-콘텐츠가 또다시 새로운 역사를 썼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가 단순한 영상 콘텐츠의 인기를 넘어, 미국 대중음악 시장의 심장부인 빌보드 차트를 완벽하게 정복하는 기염을 토했다. 작품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 앨범이 미국 현지 시각 14일 발표된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서 마침내 1위 트로피를 거머쥔 것이다.이번 앨범 차트 정상 등극은 이미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을 석권하며 신드롬을 일으킨 수록곡 '골든(Golden)'의 성공에 이은 '쌍끌이 흥행'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골든'은 통산 4주째 '핫 100' 정상을 굳건히 지키며 식지 않는 인기를 과시하고 있으며, 이제 앨범 전체가 차트의 왕좌에 오르며 '케데헌'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거대한 문화적 흐름이 되었음을 증명했다.'케데헌' OST 앨범의 1위 등극은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았다. 발매 첫 주 '빌보드 200'에 8위로 화려하게 데뷔한 이후, 무려 7주 동안 세계적인 팝스타 사브리나 카펜터의 '맨즈 베스트 프렌드(Man's Best Friend)'에 밀려 2인자의 자리에 머물러야 했다. 하지만 8주 차에 접어들며 뒷심을 발휘, 마침내 정상을 탈환하는 역주행 드라마를 완성했다. 빌보드는 "OST 앨범이 '빌보드 200' 정상에 오른 것은 2022년 디즈니 애니메이션 '엔칸토' 이후 3년 만의 대기록"이라고 조명하며 이번 성과의 역사적 가치를 부각했다.보드는 이 같은 이례적인 롱런과 역주행의 핵심 동력으로 미국 전역을 휩쓴 '싱어롱(Sing-along) 상영회'의 폭발적인 인기를 꼽았다. '싱어롱'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OST를 자유롭게 따라 부르는 참여형 관람 문화로, '케데헌'의 팬들이 자발적으로 극장에 모여 노래를 함께 부르는 '떼창' 현상이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앨범에 대한 관심과 소비를 폭발적으로 증폭시켰다는 분석이다.여기에 팬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한 '디럭스 버전' 음반 재발매 전략 또한 주효했다. 새로운 구성으로 발매된 디럭스 앨범은 실물 음반 판매량을 크게 끌어올렸고, 이는 스트리밍 및 음원 다운로드 횟수를 합산해 순위를 매기는 '앨범 유닛(Album Units)' 수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케데헌' OST 앨범은 이번 차트 집계 기간 동안 총 12만 8,000장에 해당하는 앨범 유닛을 기록하며 막강한 팬덤의 화력을 입증했다.결국 '케데헌'의 성공은 잘 만들어진 콘텐츠가 음악, 팬덤 문화와 결합했을 때 얼마나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가상의 K팝 아이돌이 부른 노래가 애니메이션의 울타리를 넘어, 전 세계 팝 시장의 흐름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 정부가 아닌 '시민'이 해냈다…세월호 참사, '치유의 기록'으로 유네스코 간다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히 아물지 않을 상처로 남은 2014년 4월 16일, 그날의 비극과 이후의 시간을 담은 기록물이 세계적인 유산으로 나아가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경기도교육청 산하 4·16생명안전교육원은 '단원고 4·16아카이브'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목록 등재를 위한 국내 심사를 통과했다고 15일 밝혔다. 이는 단순한 기록 보존을 넘어, 사회적 재난을 기억하고 치유하려는 시민 사회의 자발적인 노력이 국제적인 인정을 향한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깊은 의미를 지닌다.이번 프로젝트는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희생자들의 유품과 기록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활동을 묵묵히 이어온 비영리 민간단체 '4·16기억저장소'가 주도하고, 경기도4·16생명안전교육원이 힘을 보태며 결실을 본 대표적인 민관 협업 사업이다. '단원고 4·16아카이브 : 시민의 기억운동과 치유의 기록'이라는 이름 아래, 여기에는 별이 된 단원고 학생들의 평범하고도 찬란했던 생전의 일상과, 온 국민을 슬픔에 잠기게 했던 추모의 물결, 그리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간절한 외침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참사 이후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며 서로를 보듬고 다시 일어서려는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치열한 회복의 여정 또한 중요한 일부를 구성한다.이 기록물이 갖는 가장 큰 가치는 국가나 기관의 공식적인 시각이 아닌, 참사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유가족과, 함께 아파하고 행동했던 평범한 시민들의 관점에서 사회적 재난의 실상을 낱낱이 기록했다는 점이다. 이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건조한 사실의 나열이 아닌, 아래에서부터 쌓아 올린 살아있는 목소리의 집합체다.더 나아가, 이 아카이브는 '기록'이라는 행위 자체가 어떻게 상처 입은 이들에게 치유와 회복의 과정이 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소중한 사례다. 기억을 꺼내어 말하고, 함께 모으고, 정리하는 모든 과정은 단순히 과거를 박제하는 것을 넘어, 아픔을 직시하고 서로의 슬픔을 위로하며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공동체의 노력이었다. 경기도교육원은 이러한 의미를 더하기 위해, '단원고 4·16기억교실' 존치 과정을 담아낸 구술 기록화 사업(2021~2023년)의 결과물도 함께 제출했다.국내 심사라는 큰 산을 넘은 '단원고 4·16아카이브'는 이제 더 넓은 세계를 향한다. 오는 2026년 6월 열릴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지역위원회 총회에서 최종 등재 결정을 받기 위해, 국가유산청과의 긴밀한 소통과 협력을 통해 마지막 단계를 준비해 나갈 계획이다. 그날의 아픔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이제는 전 세계가 함께 기억하고 교훈으로 삼아야 할 인류의 유산으로 거듭나고 있다.
- 유리천장 깬 여성 감독들, 스릴러 판도를 바꾸다
최근 한국 스릴러 드라마계에서 여성 감독들의 약진이 두드러지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다. 현재 방영 중인 디즈니+ ‘북극성’(김희원 감독)과 SBS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변영주 감독)을 비롯해 웨이브 ‘S라인’(안주영 감독), 넷플릭스 ‘당신이 죽였다’(이정림 감독) 등 주요 스릴러 작품들이 모두 여성 감독의 손에서 탄생했다. 이는 과거 로맨스나 가족 드라마에 주로 참여했던 여성 감독들이 대형 프로젝트와 스릴러 장르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뚜렷한 변화다.특히 여성 감독들은 스릴러 장르에서 사건 자체보다는 인물의 내면 심리를 섬세하게 다루는 강점을 보여주고 있다. 충남대 윤석진 교수는 "통상 여성의 장르로 여겨지지 않던 스릴러에서 여성 감독의 강점이 드러나고 있다"고 평했다. 대중문화 평론가 김헌식은 "기존 스릴러가 사건 중심이었다면, 여성 감독의 스릴러는 여성 서사나 내면 심리 묘사에 충실해 좋은 결과를 내며 기회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은 연쇄 살인마 엄마와 형사 아들의 심리적 공조를, ‘북극성’은 한반도 정세 스릴러에 로맨스를, ‘S라인’은 히키코모리 주인공의 심리를 깊이 있게 다룬다.이러한 변화에는 OTT 플랫폼의 영향도 크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넷플릭스 등 OTT 여성 가입자가 늘면서 과거의 잔인하고 거친 스릴러보다 심리 묘사가 풍부한 작품들이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윤석진 교수는 스릴러가 감성과 정서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장르임을 강조하며, 여성 연출자들의 성공 사례가 누적되며 업계 인식이 변화했다고 설명했다.대중문화 평론가 하재근은 "사람 간의 관계가 섬세하고 깊이 있게 표현되는 한국형 스릴러 탄생에 여성 감독들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며, 국내 대중문화 산업에서 여성들의 지위 향상과 함께 다양한 시각과 감성의 작품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김헌식 평론가는 기존 스릴러 문법과의 상호 보완을 통해 특정 성별의 서사에 치우치지 않는 보편적 스토리를 추구해야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여성 감독들의 활약은 국내 스릴러 장르의 지평을 넓히고 K-콘텐츠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 100년간의 대실패…‘마약과의 전쟁’이 오히려 범죄를 키운 충격적인 이유
'마약 청정국'이라는 이름은 이제 과거의 유산이 되었다. 인구 10만 명당 마약사범 20명이라는 기준선을 훌쩍 넘어선 지 오래다. 2015년 마약사범 1만 명을 돌파하며 위태로운 신호를 보냈던 한국 사회는 2023년에 이르러 그 수가 2만 명을 넘어서며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듯 보인다. 이는 더 이상 영화나 뉴스 속 특정 집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사회 깊숙이 파고든 현실의 문제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미국을 휩쓴 펜타닐 대란처럼, 마약 문제는 이제 국경 없는 전 지구적 위협이다. 이에 맞서 각국 정부는 단속의 강도를 높이고 처벌 수위를 끌어올리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있지만, 과연 이 백 년 묵은 방식이 정답일까?저널리스트 요한 하리는 그의 저서 '마약 전쟁'을 통해 이 질문에 단호히 '아니오'라고 답한다. 그는 지난 100년의 역사가 증명하듯, 마약을 힘으로 억누르려는 시도는 언제나 참담한 실패로 귀결되었다고 역설한다. 이 탐사의 시작은 개인적인 고통이었다. 가족과 연인이 약물 중독으로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는 중독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며 왜 이토록 끈질기게 사라지지 않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섰다. 그 여정은 마약 금지법이 처음 태동한 20세기 초, '마약 전쟁'의 설계자였던 미국 연방마약국 초대 국장 해리 앤슬링어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앤슬링어는 대마초와 흑인에 대한 인종적 편견을 교묘하게 결합시켜 대중의 공포를 자극했고, 이는 무차별적인 체포와 감금으로 이어졌다. 재즈 가수 빌리 홀리데이가 인종차별을 고발하는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표적 수사를 당하며 삶이 파괴되는 동안, 같은 중독 문제를 가진 백인 스타들은 관용의 그늘 아래 보호받았다. 이처럼 전쟁의 시작부터 공정성과는 거리가 멀었고, 막대한 공권력을 쏟아부었음에도 효과는 미미했다.저자는 단속과 처벌이 범죄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더 잔혹한 폭력을 부추긴다는 충격적인 현실을 고발한다. 뉴욕의 한 경찰관은 단기간에 80명의 마약 거래상을 검거하는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그들이 사라진 자리는 즉시 새로운 공급자들이 채웠다.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 권력 공백을 차지하기 위한 조직 간의 다툼이 살인과 보복이라는 피비린내 나는 연쇄 반응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결국 단속은 지역 사회를 더 안전하게 만들기는커녕, 더 깊은 위험의 수렁으로 밀어 넣는 역설을 낳았다. 이 구조 속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들이다. 한 번의 체포 기록은 청년의 미래에서 교육과 취업의 기회를 평생 박탈하고, 그 가족에게까지 사회적 낙인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긴다. 저자는 "중독 그 자체보다 무서운 것은 중독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단절시키는 차가운 시선"이라고 일침을 가한다.나아가, 우리는 '중독'의 본질에 대해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저자는 중독이 단순히 약물의 화학적 작용 때문이라는 통념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병원에서 수술 후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받은 수많은 환자들이 왜 대부분 중독되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갈까? 이는 중독이 약물이라는 '물질'보다 상실, 고립, 트라우마, 사회적 단절과 같은 '환경'과 '관계'의 문제에 더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우리는 "왜 마약에 손을 대는가?"가 아니라 "왜 어떤 사람들은 중독에 취약한 환경에 내몰리게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그렇다면 해법은 어디에 있을까? 저자는 처벌 대신 치유와 재통합에 집중한 스위스와 포르투갈의 실험에서 희망의 단초를 찾는다. 스위스는 국가가 관리하는 안전한 공간에서 중독자들이 약물을 투여받으며 직업과 가족 관계를 유지하도록 돕는다. 포르투갈은 마약 소지를 비범죄화하고, 경찰이 체포자가 아닌 상담가의 역할을 하도록 시스템을 전환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과다복용으로 인한 사망률이 급감하고 사회 전체의 마약 문제가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안정되었다. 마약을 박멸할 수는 없어도, 중독자에게 파멸 외에 다른 선택지를 줌으로써 사회 전체가 더 건강해질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결론적으로 요한 하리는 중독의 반대말이 '단약(斷藥)'이 아니라 '연결(connection)'이라고 말한다. 지난 100년간 우리는 중독자를 사회의 적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격멸하기 위한 '전쟁의 노래'를 불러왔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불러야 할 노래는 그들을 다시 공동체의 일원으로 껴안는 '사랑의 노래'여야 한다고 저자는 호소한다. 단속과 처벌의 칼날이 아닌, 치유와 연결의 손길만이 이 길고 지독한 싸움에서 우리를 승리로 이끌 유일한 길이다.
- 인구 소멸 막으러 '국가유산'이 나섰다…우리 동네 향교, 종갓집이 '핫플'되는 마법
전국 방방곡곡에 잠들어 있던 우리의 소중한 국가유산이 2026년, 역대 최대 규모의 체험 프로그램으로 되살아나 국민의 곁을 찾아온다.국가유산청(청장 허민)은 12일, '2026년 우리고장 국가유산 활용사업'으로 총 379건의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최종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올해 진행된 355건보다 24건(7%)이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로, 지역 소멸 위기에 대응하고 지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국가유산청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문화, 자연, 무형유산의 역사적 가치를 각 지역의 특색 있는 인적·물적 자원과 창의적으로 결합했다"며, "이를 통해 국민에게는 수준 높은 문화 향유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에는 실질적인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사업의 취지를 밝혔다.이번에 선정된 사업은 크게 5개의 세부 분야로 나뉜다. ▲지역 유산의 숨은 가치를 발굴하는 ‘생생 국가유산’ 135건, ▲향교와 서원을 인문학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향교·서원 국가유산 활용’ 95건, ▲밤의 정취 속에서 유산을 만나는 ‘국가유산 야행’ 55건, ▲산사의 고즈넉함과 문화를 체험하는 ‘전통산사 국가유산 활용’ 46건, ▲전통 가옥의 멋과 삶을 배우는 ‘고택·종갓집 활용’ 48건이 포함됐다.가장 많은 135건이 선정된 **‘생생 국가유산’**은 잠자고 있던 지역 국가유산의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발굴하고, 현대적인 콘텐츠로 재무장시켜 살아 숨 쉬는 역사 교육의 장이자 지역 대표 문화관광 자원으로 만드는 사업이다. 경북 영덕의 '나라를 지켜라! 월월이청청, 박의장, 신장군'과 같이 기존에 큰 호응을 얻었던 103개 프로그램 외에도, 대전 중구의 '단재의 길, 그 위에 서다', 인천 강화의 '스며드는 고을, 강화유수부' 등 32개의 참신한 신규 프로그램이 대거 포함되어 기대를 모은다.95건이 선정된 **‘향교·서원 국가유산 활용’**은 엄숙하고 조용했던 향교와 서원을 생기 넘치는 문화 공간이자, 청소년들의 인성을 함양하는 인문 정신의 요람으로 탈바꿈시키는 프로젝트다. 강원 동해의 '용산서원 문화정원으로 New-學(유학)가자!'와 같이 인기를 끈 84개 기존 사업과 더불어, 충북 영동의 '황간향교 맛, 멋, 풍류', 경북 김천의 '김산의진, 살아 숨쉬는 선비의 숨결' 등 11개의 새로운 프로그램이 선비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예정이다.가장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국가유산 야행’**은 지역의 핵심 국가유산과 주변의 문화 콘텐츠를 야간 시간대에 결합해 환상적인 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으로, 총 55개가 선정됐다. 전북 익산의 '백제 국가유산 야행' 등 기존 44개 프로그램에 더해, 강원 정선의 '정선 국가유산 걷는 밤물관(밤에 걷는 박물관)', 전북 정읍의 '선비의 향기 연꽃으로 피어나다' 등 11개의 새로운 야행이 전국의 밤을 아름답게 수놓을 준비를 마쳤다.46건이 선정된 **‘전통산사 국가유산 활용’**은 고즈넉한 산사가 품고 있는 유·무형의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해 다채로운 체험, 공연, 답사 형태로 풀어내는 힐링 프로그램이다. 전북 남원 실상사의 '천년의 향기'와 같은 37개 기존 사업과 함께, 전북 진안 금당사의 '금당(金塘)이 동쪽으로 온 까닭은?', 경북 안동 광흥사의 '한글을 품고, 한글을 알린 광흥사' 등 9개의 신규 프로그램이 산사의 문턱을 낮추고 대중에게 다가간다.마지막으로 48건이 선정된 **‘고택·종갓집 활용’**은 종가와 고택에 깃든 의식주, 전통 의례 등 우리 고유의 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체험하며 그 가치를 되새기는 사업이다. 경기 남양주에서 진행되는 '영조의 막내딸 화길옹주가 보내온 청첩장'과 같은 40개 기존 프로그램에, 전남 해남의 '600년 종가 이야기-녹우당 문예기행', 충북 단양의 '단양 조덕수 고택, 남한강 달빛 소나타' 등 8개의 신규 프로그램이 더해져 특별한 하룻밤을 선사할 예정이다.국가유산청은 "이번 선정을 계기로 전국 곳곳의 국가유산이 지역 발전의 원동력이자 핵심 문화 자원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카이로 오페라 하우스 발칵 뒤집은 '한국어 노래'의 정체…조수미, 이집트 심포니와 선보인 역사적 협연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의 목소리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나라, 이집트의 밤하늘을 수놓는다. 한국과 이집트가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맺은 지 3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를 기념하여, 조수미가 데뷔 후 처음으로 이집트 카이로에서 역사적인 공연을 펼친다. 이번 공연은 단순한 음악회를 넘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두 문명권의 화합과 우정을 상징하는 문화 외교의 정점이 될 전망이다.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은 현지 시간으로 12일, 이집트 문화의 심장부인 카이로 오페라하우스에서 '조수미 & 카이로 심포니 협연' 음악회가 열린다고 밝혔다. '신이 내린 목소리'라 불리며 세계 최정상의 무대를 누벼온 조수미에게도 이번 이집트 공연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특별하다.이날 무대에서 조수미는 이집트 최고의 오케스트라인 카이로 심포니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과 완벽한 호흡을 맞춘다. 관객들에게 친숙한 주요 오페라 아리아를 통해 클래식 음악의 정수를 선보이는 한편, 한국인의 정서가 깃든 가곡을 통해 K-클래식의 아름다움을 이집트 관객들에게 선사할 예정이다. 특히 그리움의 정서를 담은 '가고파'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꽃구름 속에' 중 한 곡이 연주될 계획이어서, 수천 년 역사의 땅에 우리의 가락이 어떻게 울려 퍼질지 기대를 모은다. 또한, 현지 카이로 오페라단 단원들과의 협연 무대도 마련되어 있어 양국 음악가들이 만들어낼 하모니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음악회뿐만 아니라, 양국의 30년 우정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특별한 전시도 함께 열린다. 11일부터 28일까지 카이로 이슬람 예술박물관에서는 '함(HAAM): 함께함을 담다'라는 제목의 특별 전시회가 개최된다. 이 전시에는 지난 30년간 양국이 주고받은 외교 공식 문서와 기록물, 양국 정상이 나눈 선물 등 귀중한 사료 17점이 대중에게 공개된다. 더불어 한국 전통 공예의 미를 느낄 수 있는 공예품 8점도 함께 전시되어, 이집트 국민들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보다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한국 정부는 이번 30주년 기념행사를 발판 삼아 이집트와의 문화 교류를 더욱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다음 달 카이로에서 열리는 대규모 현대미술 축제 '카이로 인터내셔널 아트 디스트릭'에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여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조수미의 공연으로 시작된 문화 교류의 물결이 미술, 공예 등 다방면으로 퍼져나가며 양국의 우정을 더욱 돈독히 할 것으로 기대된다.
- 박물관 다 비웃는 '고고학 유희' 전시 화제…당신이 알던 유물의 개념이 완전히 뒤집힌다
과거의 유물은 반드시 박물관 유리 진열장 안에 고고하게 잠들어 있어야만 할까? 고고학이 땅속의 흔적을 파헤쳐 과거를 복원하는 엄숙한 학문이라면, 여기 그 고고학적 방법론을 현대미술의 무대로 가져와 마음껏 '유희'하는 작가들이 있다.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대안적 예술 공간 '아트스페이스 라프'에서 9월 12일부터 10월 2일까지 열리는 기획전 '고고학 유희'는 바로 이 즐거운 지적 탐험으로 관객을 초대한다.이번 전시는 연기백, 주세균, 최은철이라는, 각기 다른 매체와 방식으로 '유물'이라는 개념에 접근하는 세 명의 작가가 의기투합한 자리다. 이들은 흙먼지 쌓인 토기나 금속 파편 대신, 우리 주변의 사물과 디지털 이미지, 심지어 녹아내리는 설탕을 통해 과거의 흔적을 탐구하고, 해체하며, 오늘날의 의미로 재구성한다. 이를 통해 '무엇이 미래의 유물이 될 것인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며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먼저, 연기백 작가는 도시의 고고학자다. 그는 재개발과 철거로 사라져가는 공간, 사람들이 떠나간 이주의 현장을 누비며 버려진 사물들을 수집한다. 낡은 문짝, 손때 묻은 목가구, 깨진 타일 조각 등은 그의 손을 거쳐 단순한 폐기물이 아닌, 한 시대의 생활사와 개인의 서사를 품은 '현대의 유물'로 재탄생한다. 특히 오래된 목가구를 불로 태워 그을린 표면 아래 숨겨진 나뭇결을 드러내는 그의 작업은, 마치 땅의 지층처럼 겹겹이 쌓인 기억과 시간의 층위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며 깊은 울림을 준다.주세균 작가는 디지털 세계의 유물을 발굴한다. 그는 인터넷을 떠도는 저화질의 픽셀 덩어리, 즉 '밈(meme)'이 되거나 무심코 복제된 디지털 이미지들을 수집한다. 원본의 아우라를 상실한 이 데이터 조각들을 그는 다시 조합하고 재구성하여 완전히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창조한다. 이러한 과정은 '국보'나 '보물'과 같이 국가가 공인하는 전통적 가치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행위다. 그는 무엇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이며, 디지털 시대의 유물은 어떤 형태가 될 수 있는지를 물으며 관습적인 미적 기준을 흔든다.가장 파격적인 재료를 사용하는 작가는 최은철이다. 그는 국보급 도자기나 불상 같은 상징적인 유물들을 '설탕'으로 정교하게 재현한다. 그러나 이 달콤하고 영롱한 유물들은 영원하지 않다. 전시 기간 동안 서서히 녹아내리거나 형태가 무너지며 점차 소멸해간다. 작가는 이 허무하고 아름다운 과정을 통해 관객에게 문명의 화려함 이면에 감춰진 필연적인 덧없음과 유한함을 성찰하게 만든다. 영원할 것 같던 위대한 문명의 산물도 결국은 시간 속에서 변하고 사라진다는 진리를 감각적으로 체험시키는 것이다.전시를 기획한 황규진 기획자는 "세 작가의 개성 넘치는 작업 방식은 '고고학'이라는 공통된 키워드 아래 한 공간에서 절묘하게 어우러진다"며, "물리적, 디지털적, 개념적 차원에서 과거를 재해석하는 이들의 '유희'를 통해 관객들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새로운 해석과 감각적 경험을 얻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전시는 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딱딱한 역사가 아닌, 예술가들의 놀이터가 된 고고학의 세계에서 지적인 유희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 수교 30주년 기념, 한국이 이집트에 보낸 '역대급 선물'의 정체는?
고대 문명의 발상지 이집트와 역동적인 현대 문화 강국 대한민국, 두 나라가 외교 관계를 수립한 지 3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를 맞아 이집트의 심장부 카이로에서 특별한 문화의 향연이 펼쳐진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양국의 오랜 우정을 기념하고 미래의 협력을 약속하는 다채로운 행사를 개최하며, 나일강의 기적과 한강의 기적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하모니를 전 세계에 선보인다.이번 기념행사의 핵심은 '함(Haam): 함께함을 담다'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외교 기록물 전시다. 9월 11일부터 28일까지 카이로 이슬람 예술박물관에서 개최되는 이 전시는 단순한 유물 나열을 넘어, 양국 관계의 깊이와 의미를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한국 전통에서 '함'은 혼인을 앞두고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보내는 예물 상자로, 새로운 관계의 시작과 존중, 그리고 굳건한 약속을 의미한다. 전시의 제목은 지난 30년간 양국이 차곡차곡 쌓아온 신뢰와 우정의 기록들을 하나의 '함'에 담아 되돌아보고, 앞으로 함께 열어갈 미래를 그려보자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다.전시장은 총 세 개의 '함'으로 구성되어 관람객들을 30년의 시간 여행으로 안내한다. 첫 번째 '기록의 함: 양국의 발자취'에서는 양국 관계의 시작을 알린 공식 외교 문서와 기록물, 그리고 양국 정상이 서로에게 건넨 존중의 상징인 선물 등 총 17점의 귀한 사료가 최초로 공개된다. 이는 30년 외교사의 가장 중요한 순간들을 생생하게 목격하는 감동을 선사한다.두 번째 '연결의 함: 파피루스와 한지'에서는 양국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기록 매체인 이집트의 파피루스와 한국의 한지가 조우한다. 수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두 위대한 종이의 만남은,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진 두 나라가 어떻게 소통하고 연결되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다.마지막 '예(禮)를 담는 함: 한국의 다양한 함'에서는 한국 무형문화재 채상장, 옻칠장, 나전장 장인들의 혼이 담긴 작품들과 현대 공예작가들의 독창적인 함들이 전시된다. 이를 통해 '함'이라는 매개체에 담긴 한국 고유의 예와 정신, 그리고 뛰어난 공예 기술의 아름다움을 이집트 국민들에게 선보인다.기록의 전시가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면, 음악의 향연은 현재와 미래를 잇는다. 9월 12일, '천상의 목소리'로 불리는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가 이집트 대표 공연장인 카이로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른다. 조수미가 이집트에서 공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그 자체만으로도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녀는 아흐메드 엘 사디가 지휘하는 카이로 심포니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과의 협연을 통해 주옥같은 오페라 아리아와 애틋한 한국 가곡, 그리고 이집트 관객들만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곡을 노래하며 30주년의 밤을 황홀하게 수놓을 예정이다.이번 행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오는 10월에는 현대미술 축제인 '카이로 인터내셔널 아트 디스트릭트'에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여하여 K-아트의 진수를 선보이며 문화 교류의 지평을 더욱 넓혀나갈 계획이다. 윤양수 문체부 국제문화홍보정책실장의 말처럼, 이번 기념행사는 양국의 지난 30년 우정을 되새기는 것을 넘어, 앞으로 더욱 깊고 넓어질 문화 협력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